말씀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관주
유다의 계보
[대상] 2:11 나손은 살마를 낳고 살마는 보아스를 낳고
[대상] 2:12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베레스의 계보
[룻] 4:21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룻] 4:22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보아스의 어머니 라합
[수] 6:25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었더라
묵상
살몬(살마라고도 한다.)에 대한 말씀은 딱히 나오지 않지만 살몬과 결혼한 라합에 대해서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로 두 정탐꾼을 보냈을 때 기생 라합이 그들을 숨겨준다.
히브리서 11장 31절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라합은 여호와가 행하신 일을 듣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
여호수아 2:14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그리고 두 정탐꾼은 자기들의 목숨과 바꾸어 라합을 살려주겠다고 말한다. 마치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와 같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진 못하였지만 그 이적과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나아왔고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 그 보혈의 피로 구원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믿음이 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든 이유는 바로 행함이다.
야고보서 2장 25절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기생 라합이 여호와의 행하심을 들은 것처럼 여리고의 많은 자들이 듣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단순히 믿고 두려움에 떨기만 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두 정탐꾼을 숨겨주며 자신의 할 일을 행한 라합만이 구원받았다. 그 행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들었던 것이다.
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믿음만 있는 것도 아니요, 행함만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으로 믿는다면 행함도 함께 나타나고 그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룻이 나온다. 성경에서 여자로서, 특히 이방 여자로서 한권의 책으로 직접 쓰여진 놀라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룻기를 묵상해보면 룻이라는 여자는 세상적으로 봤을 때는 평범한 여자이다. 에스더와 같이 여왕이 된 것도 아니요, 남편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아무런 성공도 하지 못한 그저 보아스와의 결혼으로 그 말씀을 맺는, 반전의 스토리가 없는 그저 그런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런 룻이 어떻게 예수님의 계보 안에 들어가고 한 권의 성경으로 쓰여질 수 있었을까?
룻 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 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첫째는 이 믿음의 고백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시인함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과 같이 롯 역시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함으로써 유대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구원받게 된 것이다. 나의 하나님으로 시인할 때 피로써 아브라함의 혈통이 아닌 자 역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룻을 통해 나타내고 그런 롯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들어감으로 예수님의 구원에 대해 다시 한 번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는 작은 일에 충성한 자로 룻은 가장 큰 예수 그리스도의 길로 함께 걸어가게 되었다. 우리는 크게 성공하기를 원한다. 높은 자리, 많은 돈으로 주님의 역사를 나타내기를 원한다. 하지만 룻은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아주 중요하지만 세상적인 성공으로 가는 길은 멀어진 작은 삶을 살아갔지만 그 결과의 끝은 가장 큰 예수 그리스도의 길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 큰 비전을 갖는 것 역시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내 옆의 작은 일에 충성되지 않고 내가 뭔가 세상적으로 크게 이룬 일이 주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가복음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 삶 가운데서 먼저 작은 일에 충성하며 나아가길 소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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